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이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할 기준선이 바뀌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가 2026년 6월 30일 개정 벤처투자 표준계약서와 해설서를 발표했다. 2023년 이후 3년 만의 개정이며, 투자계약서(SPA)와 주주간계약서(SHA)를 분리하고 전환우선주(CPS)를 기본 구조로 권장하는 것이 골자다.
두 기관은 2025년 12월 벤처투자 계약문화 발전포럼을 발족하고 개정을 추진해 왔다. 포럼에는 스타트업, VC, 액셀러레이터, 유관기관, 법률 전문가가 참여했다. 개정 이유는 두 가지다.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K-IFRS에서 금융부채로 분류돼 상장 준비 시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문제, 그리고 창업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 문제를 해소하고 글로벌 투자 관행에 맞추려는 것이다.
딜 조건: 우선주 구조와 리픽싱이 바뀐다
기존 표준계약서를 전면 개정해 SPA와 SHA를 나눴다. SPA는 투자 시점의 주식 취득 조건과 거래 종결 절차를 규율하고, SHA는 투자 이후 주주 간 권리관계를 규율한다. 이렇게 분리하면 후속 라운드에서 신규 투자자를 추가하기가 수월해진다.
우선주 구조에서는 CPS가 기본으로 권장된다. CPS는 상환권 없이 보통주 전환권을 가진 우선주다. 투자자와 창업자가 합의하면 상환권을 선택적으로 추가할 수 있다.
CPS를 기본으로 권장하는 것은 상환권이 없는 CPS가 K-IFRS에 따라 자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서다. 다만 CPS라도 리픽싱 조건이 붙으면 전환권 부분이 파생상품부채로 분류될 수 있어, 자본 분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리픽싱 방식도 달라졌다. 신규 라운드의 낮은 발행가격을 기준으로 전환가격을 조정하던 풀래칫(Full-Ratchet) 대신 가중평균(Weighted Average) 방식을 채택했다.
사전동의권은 투자자 전원 동의 방식에서 같은 라운드 투자자의 집합적 동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RCPS가 상장 앞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
이번 개정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창업자가 한 번쯤 던져 봤을 질문이다.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재무제표에서 부채로 잡힌다는 게 무슨 뜻이고, 그게 왜 상장에 문제가 되나요?” RCPS는 상환권과 전환권을 함께 가진 우선주다.
K-IFRS 제1032호는 현금 인도 의무가 있는 금융상품을 금융부채로 분류하도록 규정한다. RCPS가 금융부채로 재분류되면 부채비율이 오르고 자본총계가 줄 수 있다. 공정가치로 측정할 때 기업가치가 오르면 평가손실이 손익계산서에 잡힐 수도 있다.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는 문제다. K-GAAP에서는 RCPS를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일부 스타트업은 RCPS를 CPS로 전환하거나 처음부터 CPS로 설계한다.
시장 시그널: 창업자 의무 완화와 책임 제한
IPO 의무는 결과 달성에서 합리적 최선 노력(Best Efforts) 의무로 완화됐다. 시장 상황이나 외부 요인으로 상장이 늦어지거나 무산됐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 위반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제3자 연대책임 제한도 반영됐다. 2025년 12월 30일 시행된 개정 벤처투자법이 제3자 연대책임을 원칙적으로 금지했고, 중소벤처기업부는 2023년부터 하위 규정으로 관련 책임을 제한해 왔다. 창업자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고 법령이 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연대책임이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번 개정은 투자자 권리 축소나 창업자 일방 유리가 아니라 계약의 균형을 다시 설정하려는 시도다. 상장까지 오래 걸리는 딥테크와 바이오 기업에 특히 의미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표준계약서는 강제 문서가 아니다
표준계약서는 강제 적용 문서가 아니다. 개별 협상으로 다른 조건을 정할 수 있다. 다만 강행규정은 합의로 바꿀 수 없다.